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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 단골처럼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집 상태가 이 모양인데, 월세 안 내고 버텨도 되지 않나요?"
듣고 있으면 저도 참 안타깝습니다.
물은 새고 곰팡이는 피는데 집주인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돈 못 주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게 당연하거든요.
감정적으로는 백번 천번 이해가 가는 상황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법은 우리 마음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1. "고쳐주는 건 주인 의무라면서요?"
네, 맞습니다.
민법 제623조를 보면 임대인은 세입자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집을 유지해 줄 의무가 있어요.
큰 비가 와서 물이 새거나 보일러가 터지는 등 주거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면 당연히 집주인이 수리비를 내야 합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어디까지 고쳐줘야 하나"라는 기준이 참 모호하거든요.
2. 법과 현실의 온도 차이
현실에서는 '살기 좀 불편한 정도'인데, 세입자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대법원 판례를 보면 아주 단호합니다.
"하자가 있다고 해서 월세 전체를 안 내는 건 안 된다. 딱 하자가 있는 만큼만 깎아서 내라."
이게 법의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방 세 개 중 하나에 곰팡이가 폈다면, 그 방 하나만큼의 가치만 월세에서 빼고 내야지, 전체 월세를 안 내버리면 오히려 세입자가 '채무불이행'이라는 덫에 걸리게 됩니다.
3. '억울한 세입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가장 위험한 게 바로 이 과잉 대응입니다.
억울한 마음에 월세를 몇 달 안 내고 버티다 보면, 어느덧 연체 금액이 쌓이게 되죠.
이때부터는 전세 역전입니다.
집주인이 "월세 밀렸으니 나가달라"며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명도소송을 걸어오면, 처음에 주장했던 '집 하자' 문제는 힘을 잃고 맙니다.
결국 피해를 입고도 쫓겨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거죠.
4.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꼭 기억하셔야 할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무조건 기록을 남기세요.
전화로 화내는 것보다 문자, 카카오톡, 혹은 내용증명을 통해 하자를 명확히 알리고 수리를 요청한 근거를 만들어둬야 합니다.
둘째, 직접 고치고 청구하세요.
주인이 계속 버티면 민법 제626조에 따라 세입자가 먼저 수리하고 그 비용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셋째, 월세는 일단 내되 협의하세요.
전액을 안 내는 위험한 도박보다는, 하자로 인한 불편함을 근거로 월세 감액을 정식으로 요구하는 것이 훨씬 전략적입니다.
마무리하며
임대차 분쟁은 결국 기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법적 근거를 잘 갖췄느냐'의 싸움입니다.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하자에 대해 내가 얼마나 차분하고 정당하게 대응했느냐는 사실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